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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4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 선 바울>
이정현 목사 2024-11-24 추천 0 댓글 0 조회 173
[성경본문] 사도행전25:1-27 개역개정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1124일 사도행전 25:1-27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 선 바울

 

앞 장의 내용은 더둘로가 고소한 것을 바울이 논리 정연하게 변호했음에도 불구하고 벨릭스가 바울의 무죄를 판결하지 아니하고 다시 투옥시킨 것입니다. 자기 부인과 함께 바울을 찾아왔다가 바울로부터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한 강론을 듣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로부터 뇌물을 받을까 해서 그를 자주 만났으며 또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죄 없는 바울을 2년이나 가두어 둡니다. 한편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하여 유대 땅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25장의 말씀은 베스도가 부임하자 그 앞에서 행한 바울의 변호(1-12)와 아그립바 왕에게 베스도가 바울이 고소당한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13-22)과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서는 내용(23-27)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 장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하자 그 앞에서 바울이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부임한 새로운 총독은 보르기오 베스도(Porcius Festus)입니다. 그때가 주후 60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3일 만에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원래 그의 임지는 가이사랴이지만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그곳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신임인사를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총독을 만난 초면의 자리에서 유대 지도자들은 2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새 총독의 부임을 기회로 생각하고 이 참에 바울을 처치할 흉계를 꾸민 것입니다.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3). 2년 전의 암살계획을 그대로 실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재판을 빙자하여 살인행위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계획으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청원하였지만 베스도는 여기에 동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가이사랴에 구류되어야 하며 자신도 곧장 내려갈 것이니 만일 그 사람에게 옳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고소를 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라고 하지 말고 너희들이 가이사랴에 내려와서 상소하라는 말입니다. 베스도의 거부는 이미 로마의 법에 이관된 사건을 유대인의 법에 돌릴 수 없다는 뜻으로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음모는 완전히 거부된 셈입니다.

 

신임 총독은 8-10일 정도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가이사랴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유력한 유대인들과 같이 왔을 것입니다. 베스도는 다음날 곧장 재판을 개정하여 바울을 불러냅니다. 바울에 대한 공적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에 관한 서류, 즉 루시아의 편지와 전임자 벨릭스의 법정 소송 보고서를 다 읽고 준비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그들은 둘러서서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여러가지 말로 죄목의 중대성을 주장하였지만 아무런 증거를 대지 못하였습니다. 과거 예수님에게도 산헤드린 법정에서 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했지만 그 많은 고소가 하나도 입증되지 못했듯이(26:59-60) 바울에 대한 고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는 여기서 그들이 제시한 바울의 죄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음에서 변호하는 내용을 참고할 때 그 죄목은 세 가지로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8). 그것은 율법 파괴, 성전 모독, 가이사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2년 전의 송사와 같고 마지막 조목은 새로 첨가된 것으로 총독을 비롯한 다른 로마인들을 자극할 수 있는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아마도 변론의 내용은 바울이 여러 로마 행정구역에서 소요를 선동했다는 고소에 대한 답변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해 종교적으로든 로마인들에 대해 정치적으로든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변호한 것입니다.

 

이때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 앞에서 심문을 받겠느냐’(9)고 묻습니다. 베스도도 벨릭스와 같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그 당시 총독에 대한 불평을 주민들이 황제에게 신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불평은 총독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었으므로 총독들은 그 지방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유대인들의 소청대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겠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가이사의 재판에 선 이상 가이사에게 심판을 받을 것이지 유대인들에게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또한 나는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다고 재천명합니다. 만약 내가 불의한 일을 행하였다면 죽어도 좋지만 저들의 송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다고 말하며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11)는 말은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는 말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최고 법정에서 심리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법원에 상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처럼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특권인 것입니다. 이 당시 가이사는 로마 황제 네로였습니다. 그는 A. D. 54-68년 사이의 황제였고 가이사의 이름을 부르도록 한 마지막 황제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를 거부하고 로마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가이사에게 송사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베스도가 벨릭스보다는 현명하지만 역시 유대인들을 생각해서 재판을 오래 끌 수 있었기 때문이고 만일 베스도가 무죄 석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유대인들의 암살 음모는 바울의 신변에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주님의 명백한 지시로(23:11) 로마로 가는 것이 바울의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19:21).

 

바울의 이런 말들을 들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여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12)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림 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41_가계도.jpg

 

다음은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이 고소당한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13-22). 이때 새로 부임한 신임 총독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가 함께 방문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버니게에 대하여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먼저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아그립바 2세를 말하고 그는 주후 50년에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 그의 숙부 헤롯의 영토였던 칼키스(Chalcis, 아그립바 1세의 동생) 지방의 영토를 얻고 겸하여 대제사장 임명권을 받았습니다. 주후 55년에는 네로가 갈릴리와 베뢰아 및 인근 14부락을 덧붙여 주었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아그립바는 헤롯의 영화를 기념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를 네로니아’(Neronias)라 부르며 수도로 정하였습니다. 이 젊은 왕(당시 33)은 유대 종교의 권위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전쟁(68-70) 때에도 친 로마파로 활동하여 황제의 많은 신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약 50년을 통치하다가 주후 100년경 후계자 없이 죽어 헤롯의 마지막 왕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한편 버니게는 아그립바 1세의 맏딸이고 아그립바 2세의 한 살 아래의 누이입니다. 드루실라(24:24)의 언니이자 유명한 요부로 알려졌습니다. 자기 숙부인 칼시스에게 시집을 갔다가 그가 죽었을 때 오빠에게 와서 오빠와 정을 통하고 있는 여인입니다(당시 32). 그 후 그녀는 길리기아 왕 폴레몬(Polemon)과 결혼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이혼하고 다시 오빠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정부가 되었고 그의 아들 디도(Titus)와 유대 전쟁 때 친해져 결혼까지 하였으나 로마 시민의 반대로 버림을 받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친 로마파이므로 총독의 부임에 즉각 문안을 온 것입니다.

 

그들이 가이사랴에 여러 날을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베스도로부터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당시 바울의 나이는 60세 정도).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14). 로버트슨이라는 학자는 베스도의 이 말투에서 그의 바울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구류하여 두었다는 이 말은 바울을 벨릭스가 남기고 간 잔류물 중의 하나로서 일종의 폐품 취급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총독은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전도자를 방탕한 한 쌍의 남녀에게 멸시하는 투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권세자들과 이방인들도 전도자들을 이 사회의 골칫거리와 폐품으로 취급하여 멸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퉁명스럽게 말을 시작한 총독은 방문한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과 관계하여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나열합니다. ‘내가 부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더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더라. 그래서 고소할 내용이 있으면 가이사랴에 와서 고소하라고 했다. 그들이 이곳까지 와서 내가 다음날 재판을 열었다. 그러나 원고들이 피고의 악행을 증명하지 못하였다. 피고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다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해서 지금 피고를 구류하여 두었다.’ 이런 보고였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아그립바가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가 기록한 복음서에서도 대 헤롯의 아들이며 아그립바의 증조부인 헤롯 안티파스(Antipas)가 세례요한(9:9)이나 예수님(23:8)을 보고자 한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실한 종교심에서 그의 말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흥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소청대로 내일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서는 내용입니다(23-27). 베스도는 약속대로 신문소를 배설하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를 초청하여 바울을 그 앞에 세우고 사연을 진술하도록 합니다. 많은 고관들을 대동하고 접견 장소에 나온 아그립바의 행색은 휘황찬란하였습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23). 크게 위엄을 갖추고 접견 장소에 들어왔다는 말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왕복 등으로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나왔다, 또는 외형적인 과시가 환상적이었다는 말입니다(위엄-판타시아스; fantasy). 아그립바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도 가이사랴에서 이렇게 위엄을 베풀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는데(12:21-23) 그것도 모르고 그 아들이 똑같이 그 죄악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그 앞에 끌려 나온 바울은 결박된 죄수의 차림,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은 호화찬란한 모습으로 신문소에 앉은 권세자들의 마음은 완악하고 부패하였으나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바울의 마음은 의롭고 깨끗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온 접견 장소신문을 위해 마련한 장소또는 판결을 위한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에 대한 판결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21-22) 단순히 바울의 진술을 듣기 위한 접견 장소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베스도가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경위와 그 목적을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하여 내게 청원하여 내가 심문하였으나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하였기에 나는 상소할 자료를 얻기 위하여 그를 이 자리로 불러 냈다고 말합니다. 죄목도 없는 죄수를 황제에게 보내는 일은 무리한 일이므로 심문한 후에 합당한 소장(疏章)을 만들기 위하여 아그립바 왕 앞에 바울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왕께서 사건 심리를 잘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스도는 아그립바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들에 대한 전문가였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6:3).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변호는 다음 장으로 이어지고 본 장의 내용은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결론

본 장에서는 바울이 새로 부임한 베스도 앞에서 네 번째로 변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인은 율법을 어기거나 성전을 모독하거나 그 어떤 소요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진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를 방문하였을 때 베스도는 왕에게 바울이 고소당한 내용을 설명해 줍니다. 그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 했던 아그립바가 자신을 마음껏 꾸미고 그의 누이와 함께 접견 장소에 나타났을 때 바울은 초라한 죄인의 모습으로 그 앞에 섭니다. 바울은 왕 앞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긴 변호를 하게 됩니다.

 

바울은 죄도 짓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지금까지 여러 번 심문을 당하고 거기에 맞서 자기변호를 합니다. 유대인들 앞에서의 심문과 변호가 있었고(22:1-16) 공회 앞에서 당한 심문과 변호가 있었고(23:1-10)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심문을 당하였고(24:1-23) 베스도 앞에서도 심문을 당하였으며(25:1-9) 그리고 아그립바 2세 앞에서도 심문을 받고 여기에 맞서 변호를 하게 됩니다(26:1-32). 자기 동족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된 심문은 이제 로마 정치인들에게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바울을 선택하실 때 말씀하셨던 것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5-16).

 

숱한 심문 중에도 그는 무죄를 주장했고 아울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할 것을 꿈꾸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법정에서도 자신의 입술에 할 말을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그의 몸은 가이사랴의 헤롯 궁에 매여 있어도 그의 마음은 이미 로마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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