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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20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이정현 목사 2025-07-20 추천 0 댓글 0 조회 71
[성경본문] 요한복음10:1-21 개역개정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720일 요 10:1-21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0장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자기 계시를 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이 두 가지의 사실을 말씀 해 주셨는데, 같이 그 의미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양 우리의 문이시며 양의 목자이십니다(1-10).

 

이 부분의 말씀은 비유라고 했습니다. 6절에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것과 가장 비슷한 것을 옆에 두고 그것을 설명함으로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의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진리를,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비유로 말씀 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할 정도로 이 땅의 것을 비유로 하늘나라를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이 비유에는 한 가지 핵심 된 뜻만 발견하면 되고 이렇게 비유로 가르치신 목적은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하심이고 듣지 않고 완고한 사람에게는 더 영적 무지함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떤 비유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일명 양 우리의 문 비유라고 말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목장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양의 우리, 즉 양들이 비바람을 피하고 밤에 짐승들로부터 해 받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는 우리가 있고, 거기에는 짐승의 출입이 가능한 개폐식의 문이 있게 마련입니다. 양들이 아침에 그 문을 통해서 물을 마시고 풀을 뜯기 위하여 들판으로 나가게 되고 저녁 때가 되면 돌아와서 그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을 통하지 않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는데 그런 자는 절도며 강도라고 했습니다. 양과 목자를 얘기하시다가 그와 대조되는 절도와 강도를 거론하셨습니다. 여기의 양과 목자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다윗의 시편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아름답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리자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고 그 왕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불렀는데 이는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잘 돌보고 인도해 가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말씀을 보면 그들은 백성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마치 자기 양을 돌보지 않는 목자와 같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고 약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여주시고 위경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이런 배경하에서 예수님은 양인 새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목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양들에게 꼴을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구원하는 양들의 목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나는 양의 문이요, 나는 양의 목자라’(7, 2)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 우리의 문임과 동시에 양들의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반해 절도와 강도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돌보지도 않으며 자기들의 잇속만 챙기는 사악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뿐만아니라 예수님의 교훈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로서 문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 아니라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을 뒤에 가서는 도둑(10), 삯꾼(12), 이리(12)’라는 말로도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이시며 또한 양의 목자로서 자기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를 때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가지만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여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그처럼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각각 부를 정도로 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4절에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우리에 있는 양들을 인도하여 푸른 초장으로 갈 때에 양 한 마리라도 빼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 내어놓은 후에야 앞서 인도하여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양 한 마리라도 등한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실 때 소자 한 사람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다 내어 보낸 후에 푸른 풀밭과 맑은 시냇물 가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양들은 주인의 음성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를 보면 그가 누구의 양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을 음성을 듣고 따르게 되어 있지만 이단이나 사이비나 거짓 교사들의 말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7)임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양의 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통로를 의미합니다(14:6).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118:19-20을 해석하면서 말하기를 문은 의의 문, , 그리스도라 하였고 익나티우스(Ignatius)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문, , 그리스도라 하고 그것을 통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선지자들, 사도들, 또는 교회가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슐라텔(Schlatter)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문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의의 문이십니다.

그리고 8절의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예수님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와서 교권을 잡았는데, 아직도 예수님 당시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전에 온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들 이단들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그들이 곧 절도요 강도이며 그들이 온 것은 양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고 양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문인데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현재 누리게 될 구원의 풍성한 은혜와 내세에 누리게 될 더 좋은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삶이 가능한데, 오직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런 풍성한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11-18).

 

앞 문단에서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과 절도와 강도인 바리새인들과 대조하여 말씀을 하셨다면 이 부분에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삯꾼인 종교지도자들과 대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나는 선한 목자’(11, 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나는 ...이다라는 형식의 자기 선포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시라는 자기 정체성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사역을 하실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말씀은 아무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선포는 곧 그가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라고 자기 선포를 하시면서 선한 목자의 몇 가지 특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들도 선한 목자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목자와 양 사이의 관계가 좋아서 서로를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간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라는 문구는 본 장에 무려 3번이나 나타납니다(4, 5, 27).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실을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그 목자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모이는 법입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도 본문에서 3번씩이나 반복, 강조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11, 15, 17). 이것은 양처럼 연약하고 죄악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하시겠다고 하셨나요? 지금 우리에 들어있는 양들뿐만아니라 16절에 또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지금 우리에 든 양과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한 무리가 되게하여 한 목자의 음성을 듣게하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들을 먹이고 보호하고 인도하겠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 일을 주께서 스스로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 반면 선한 목자와 반대되는 삯꾼의 특징도 몇 가지 있습니다. 삯꾼은 양이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양들은 결국 이리에 의하여 상처와 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삯꾼은 양들이야 어찌 되던지 상관없이 양들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데 삯꾼은 자기가 살겠다고 양을 버리는 것입니다.

 

삯꾼과 비교되는 예수님의 선한 목자되심을 생각할 때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나를 여러 가지 위험 가운데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시마다 일마다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조금씩 성화의 길을 걸어오게 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 인도해 주셨습니다. 악한 원수들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나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선한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19-21).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양의 문이고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고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가리켜 절도요 강도요 삯꾼이고 악한 이리라고 하니까 이 말씀을 듣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20)라고 말했습니다. 앞에서도 우리가 살펴 본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 중에 이런 반응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미쳤다, 귀신들렸다, 정신 나갔다,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다, 왜 저런 사람의 말을 듣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 베스도는 그를 미쳤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26:24). 예수님과 바울은 진리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귀신들려 미쳤다는 반응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유대인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였고, 자기들의 전통의 관점에서, 안식일의 관점에서, 유일신의 관점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나쁜 평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몇 사람은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21)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 말은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내 쫓을 수 있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3:23).

 

아무튼 에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항상 반응은 이 두 가지 즉,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사실은 열처녀 비유나(25:1-13)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25:31-46)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나는 양 우리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은 의의 문이고 유일한 문입니다. 구약시대 때 성막의 문이 유일하게 동쪽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야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입는 유일한 길이요 문이라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양을 키우는 시골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 목동을 만나서 양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목동이 양 우리를 보여 주면서 입구가 좁은 원형으로 되어 몇 겹을 돌아서 가운데 넓은 곳이 나왔습니다. 양이 저녁에 돌아와서 이렇게 들어가서 이곳에서 밤을 지내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이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입구에 문이 없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동이 내가 문이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해가 저물어 양들이 다 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입구에 앉아 있습니다. 나를 지나지 않고는 어떤 양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어떤 늑대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내가 문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목동처럼 예수님이 양 우리의 문이시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양인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보호를 받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풍성한 꼴을 먹으며 예수님을 통해서만 천국까지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되시는 그분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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