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4 12 <나는 죄를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다>
- 운영자 2026.4.12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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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Ⅰ서1 : 8 - 10 | 개역개정
-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성경본문] 요한Ⅰ서2 : 1 - 1 | 개역개정
-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
26년 4원 12일 요일 1:8-2:1 나는 죄를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로 “죄를 용서받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죄 사함의 은총’에 관한 신앙 고백입니다. 아주 짧은 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릴 때에 피차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을 증거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증거하는 어느 진리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는 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거부감부터 생기기 쉽습니다. “아니, 내가 왜 죄인이야? 살인을 했어? 도적질을 했어? 간음을 했어? 세금을 떼먹었어? 나만큼만 살라고 해, 나는 깨끗해.”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우리가 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 행위라는 것”입니다(8). 더 나아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말합니다(10). 이 같은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은 고상하고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미달되면 모두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맨 먼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총괄하는 선악과 계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 죄가 모든 인간에게 대대로 내려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죄성을 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를 전가 받아 다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51편 5절에서 그런 사실을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러한 원죄를 갖고 출생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 마음까지 부패하여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에게 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가득 들어있는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됩니까? 전체가 까맣게 됩니다. 아담의 원죄로 모든 인간이 이렇게 죄로 오염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괜찮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부패한 인간끼리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겉에 보이는 언행 뿐 아니라 마음의 생각부터 완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부터 간음이고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것부터 살인이라고 말씀합니다(마 5:21-22, 27-28). 여러분, 비디오 카메라는 우리의 겉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얼굴이나 옷 입은 모습이나 배경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마음이나 생각까지는 촬영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실제로 찍어서 사람들 앞에 보여 준다면 당당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치고 이 범주에서 벗어날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영웅호걸, 흑인, 백인, 황인 모두가 다 죄인이 되어 죄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2. 죄의 비참한 결과는 죽음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여기서의 사망은 영적 사망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면 거기서 불안과 두려움, 불만족, 시기, 살인, 도적, 술취함, 방탕이 생깁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므로 세상의 어떤 것을 다 갖추어도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영적 고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은 탈옥수 신창원의 고백입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도피 행각을 하며 탈취한 돈을 펑펑 쓰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불안했습니다. 왜일까요? 죄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검거되었죠. 그때 그의 고백이 “이제는 그냥 편해요”였습니다. 차라리 잡히고 나니까, 죄 값을 치르게 되니까 편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주며 더 나아가 질병과 죽음까지 초래합니다. 그러나 가장 비참한 것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비참한 결과가 있기 때문에 죄 사함의 은총이 우리에게 절실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이 죄값에 대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고 완전하신 분이므로 결코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회법으로는 완전 범죄가 있을 수도 있고 공소 시효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죄 값을 다 치르거나 아니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결코 대충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 값을 치르는 것은 너무 비참합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종내는 영원한 사망에 이릅니다.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비극을 피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죄 사함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미국 시카고 주변에 해몬드라는 도시에서 사역하는 잭 하일즈(Jack Hyles)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기 싫었던 한 청년이 권총을 들고 강단에 뛰어 올라와서 목사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강단에 방탄유리를 설치해 놓고 지금도 계속하여 죄의 결과가 죽음임으로 회개하여 죽음의 길을 피하라고 외치고 있답니다. 그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든 답니다.
3. 죄 사함 받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혹자는 적선을 합니다. 그러면 죄를 상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혹자는 죄를 심리적인 것으로 격하시키고 그냥 무시하고 잊어버립니다. 철학자 스피노자(B. de Spinoza)는 죄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허위의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중에는 죄가 일종의 노이로제니까 무시해 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자는 자학하다가 목숨을 끊어버림으로써 속죄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으로, 그리고 이 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전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제시한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본문 2장 2절을 보면 예수님을 ‘화목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르는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지라 인간이 죄로 인해 불행해지거나 멸망 당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사 죄악된 인간을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요 1:29). 그것이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자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다가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엡 1:7). 그런데 이때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2천년 전에 있었는데 오늘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의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나의 삶을 보면 아직도 실수하고 죄를 짓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것은 어떻게 하나? 하는 의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의문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구절이 본문 2장 1절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대언자는 변호자, 옹호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지만 지금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믿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대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일단은 모든 죄(과거, 현재, 미래)를 사한다는 선언을 하십니다(칭의). 그런데 이것은 법적이고 신분적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아직도 남은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을 받고 다시 범죄 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기 전 옛사람의 죄악된 습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때도 역시 예수님이 대언해 주십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 자신이 자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럴 때에 죄를 사해 주십니다. 이 약속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말은 곧 신실하신, 그래서 약속을 꼭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죄를 사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죄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영접할 때도 회개해야 되지만 그 후에도 천국 갈 때까지 계속 자신을 살피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살다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성화되어 가는 과정 중에서 죄를 범하였을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솔직한 마음으로 죄를 슬퍼하며 다시는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믿음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 없이는 결코 죄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때마다 가슴을 치며 마음을 뜯으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여러 번 잘못을 하고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품으로 안기듯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를 사하여 주실 줄을 믿고 아버지 품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어떤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까?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가 가리움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4.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마 3:8). 이런 삶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들입니다.
1)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은 결코 값싼 게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것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마땅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항상 해야 합니다. 항상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보배 피로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에, 죄 사함 받은 은혜가 있기에, 죄를 단호하게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하므로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여야지, 예수 믿고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면 곤란합니다. 주님이 죄를 사해 주실 때는 아무리 큰 죄라도 무조건 용서하셨지만 그 후에는 죄를 짓지 말라고 꼭 당부하셨습니다(요 8:11). 또 성경은 회개하고서 또 다시 범죄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잠 26:11, 벧후 2:22).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관용의 인격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기에 남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용서하는 삶을 실천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가기도 중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주님이 교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큰 죄에서 용서받은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의 말씀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4)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의 회심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여리고 세무 서장이었고 로마 정부의 하수인으로서 동족을 부당하게 괴롭히며 착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과 구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못된 죄인이었지만 은혜로 죄 용서를 받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즉시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하였습니다(눅 19:8-9). 참으로 대단한 변화의 삶입니다. 즉각적이고 확실한 헌신의 삶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고 죄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달란트와 각종 은사를 주를 위해 써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이웃의 유익을 위해 기쁘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 죄의 비참한 결과는 죽음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가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죄 사함 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죄의 은총을 받아 성도가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감사하며 살고, 더욱더 거룩하게 살고, 이웃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이 큰 죄에서 용서받은 자의 마땅한 삶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죄를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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